로라

김초엽

Artwork by Weims

진은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온종일 깜빡이는 커서를 보았는데도 답장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간 쌓인 메일에 답장을 보내 지 않은 지가 꽤 되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본문 정도는 확인했는데, 이제는 제목만 보고도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어 읽지 않았다.

대부분의 메일은 《잘못된 지도》에 관해 묻고 있었다. 자신의 과제나 논문 집필을 위해 더 많은 사례를 듣고 싶다거나 참고 자료를 얻고 싶다는 사소한 요청이 많았지만, 그 밖에도 내용은 다양했다. 주위에 ‘지도’가 망가진 사람이 있다거나, 자신이 잘못된 지도를 지닌 것인지 의심된다는 하소연, 밑도 끝도 없이 당장 진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부탁까지.

처음에 진이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모두 읽어보았던 이유는, 혹시나 진이 찾고자 했던 바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진은 기대를 접었다. 진은 자신에게 메일을 보내오는 사람들의 절실함을 이해했다. 한때는 진도 그랬었다. 그래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고, 잠을 줄여가며 취재를 했고, 논문을 읽고 낯선 의학 용어들을 더듬어가며 공부했다. 하지만 이제 취재는 끝났다. 진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고, 지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지도》를 읽고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삶에 중요한 영감을 받았다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건 이상하고도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일이었는데, 정작 그 책을 쓴 진에게는 수많은 의문만 남았기 때문이다.

로라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여행은 진에게 어떤 답도 주지 않았다. 《잘못된 지도》는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었을지언정 진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진은 이제는 그 이야기를 매듭지어버린 저널리스트에 불과했다. 《잘못된 지도》가 작년에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고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원작을 쓴 진에게 오는 인터뷰 요청과 이메일 문의가 급증했지만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무슨 말을 덧붙여봐야 불필요한 사족이 되리라는 생각. 진의 내면에서 이 문제는 이렇게 미완의 상태로 끝나버렸으니까.

그런데 일주일 전에 온 메일은 조금 달랐다. 자신을 H라고 밝힌 여자는, 참고 자료를 요청하지 않았고 본인이나 다른 사람의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지도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이 책을 발견했는지와 같은 흔한 이야기조차 없었다. 그의 메일 서두는 평범했다. 《잘못된 지도》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이 책이 자신의 삶에서 아주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다고. 물론 그것뿐이었다면 진도 이 메일을 다른 메일과 달리 취급하지 않았을 것 이다.

H는 다른 질문을 덧붙였다. 그는 로라에 관해 물었다.

 

예전에 당신의 연인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과도 매우 비슷해서, 오랫동안 그 글을 생각해왔어요. 헌사의 L이 아마 그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도 이 책을 읽었나요?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물어도 될까요?

 

H는 어디서 로라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것일까? 진은 책에서 한 번도 로라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 모든 여정과 모든 문장의 근저에 로라를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지만, 진은 로라의 이름을 결국 쓰지 않았다. 설령 로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허락해주었다고 해도, 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간 이후의 인터뷰에서 무심코 이야기를 한 것일까 돌이켜보아도, 그런 기억이 없었다. 섬세한 독자 일부는 간혹 서문의 그가 누구인지를 물어왔지만, 진은 그 질문에 늘 입을 다물었다. 진은 어쩌면 H가 말하는 ‘예전’이라는 것이 정말로 오래전, 진의 마음속에 《잘못된 지도》의 초안이 그려지기 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이 원고료로 제대로 된 생계를 꾸리기도 전, 시시한 연애 칼럼을 잡지에 싣고 고작해야 푼돈을 쥐던 시절에. 진은 그때 썼던 글들을 생각하다 후회스러워졌지만, 먼저 H에게 로라의 이야기를 읽은 곳이 어디인지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일을 쓰는 동안 자동세척을 마친 커피머신이 이제 막 커피를 내리며 요란한 소음을 냈다. 진은 식탁 앞으로 걸어가 커피잔을 손에 쥐었다. 손에 닿는 뜨거운 커피잔의 감촉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럴 때가 있었다. 로라에 대해, 로라의 삶에 대해, 로라의 감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아주 일상적인 감각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진은 손바닥의 열기와 손등에 닿는 찬 공기의 대비를 생각하며, 동시에 로라를 생각했다. 그 삶은 어떤 감각으로 가득 차 있을까.

로라는 말했다. 사랑과 이해는 같지 않다고. 진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어 긴 취재를 시작했다. 로라의 어떤 부분이 완전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로라가 진에게 그것을 설명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은 진을 슬프게 했다. 진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로라와 비슷한, 그러나 정확히 같지는 않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진을 경계했고, 때로는 반겼고, 가끔은 거부했지만, 진은 그들에게서 각자 다른 진실한 내면 일부를 발견했다. 그래서 한순간 진은 자신이 로라를 거의 이해했다고, 로라의 복잡한 내면에 거의 가닿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잘못된 지도》는 이런 헌사로 시작한다.

 

여전히 불가해한 L에게.

 

*

인간은 고유의 신체 지도를 가진다. 팔과 다리를 의식하지 않을 때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몸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고유수용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긋난 고유수용 감각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잘못된 지도’를 가진다.

일시적인 신경 마취가 고유수용 감각을 잃게 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자기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심하게는 몸과 영혼이 분리된 감각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것은 대개 짧은 순간 지속되는 부작용에 불과하다. 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일치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팔과 다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거나, 자신의 시각 또는 청각과 같은 감각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의 지도와 현실의 몸을 일치시키기를 원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스스로 눈을 멀게 하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 팔을 절단한다.

 

진의 첫 목적지는 마드리드였다. 마드리드의 한 식당에서 진은 절단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제 막 모임을 조직하는 단계였고, 그들 중 일부는 몸 정체성 통합 장애를 진단받았다. 그들은 뇌 내의 신체 지도와 실제 신체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불쾌감을 경험했다. 어떤 이들은 보조기구로 신체 일부를 고정해 무력 화하는 것에 만족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자신들에게 적합한 의료 시술, 즉 수족 절단을 시행해줄 의사를 찾고 있었다.

“다른 치료법은 없나요?”

“다들 시도를 안 해봤겠습니까? 온갖 심리 상담, 정신 치료를 시도했지요. 수십 종류의 약을 먹어봤고요. 거울 치료나 시뮬레이션 치료로 효과를 본 사람들도 아주 드물게 있긴 해요. 결국 그걸로도 안 됐던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죠. 의사들이 우리를 고치겠다고 얼마나 엉뚱한 시도를 연달아서 해댔는지 들으면, 당신도 한숨이 나올걸요.”

그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의 사연을 모은 공개적인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했다. 웹사이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지만 곧장 수많은 비난에 직면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당장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일부 장애인 단체는 그들이 신체장애를 낭만화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웹사이트는 잠정 폐쇄된 상태였다.

“우리도 팔과 다리를 잃은 채로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알면서도, 이 끔찍한 불일치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겁니다. 멀쩡한 팔다리를 절단하는 것이 너무 기괴해 보인다는 건 압니다. 그렇지만 안전한 환경에서 신체에 적절한 처치를 하는 것과, 헛된 희망을 걸고 끊임없이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잔인할까요? 우리는 수십 년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어요.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에 감금당하거나, 언젠가 정신 이상을 치료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위로를 받는 게 다였죠.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치료법을 가정해서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단체의 요직을 맡고 있다는 남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아는 이들 중에는 스스로 다리를 절단하려다 감염되어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잘라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이 감각하는 부위보다 너무 낮은 위치를 잘라서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요. 제가 아는 어떤 녀석은, 결국 총으로 자기 팔을 날린 다음 병원에 가서 절단 할 위치를 세세히 주문했어요. 지금 그는 자신의 신체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지금 우리에게 허락된 방법은 고작 그런 것들뿐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누군가가 진이 책을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혜윤을 소개해주었다. 혜윤은 드물게도 고유 감각 자체를 전부 상실한 사람이었다. 처음에 진은 전달받은 혜윤의 메일로 연락했다. 혜윤은 손의 위치 감각이 없어 타이핑을 하는 일이 무척 힘들다며 화상 전화를 요청했다. 화면 속의 혜윤은 놀라울 정도로 외견상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쉴 새 없이 자신의 몸을 곁눈질로 확인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어 불안하다고 했다. 진은 마드리드의 모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절단이라는 치료법에 대한 혜윤의 견해를 물었다.

“그 이상한 친구들에게 소개받으셨단 말이죠? 재미있는 친구들이죠. 그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요. 저도 제게 감각 할 수 없는 몸이 있다는 사실이 끔찍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절단에 대해서라면 잘 모르겠어요. 제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만약 그런 방식으로만, 절단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저에게는 죽는 것 외에 방법이 없을걸요. 그렇지 않 나요? 그럼 전 뭘 해야 하죠?”

혜윤은 농담이라며 웃었다.

“저도 죽음을 자주 생각하기는 해요. 그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은 변형된 지도를 가진 셈이고, 저는 아예 지도를 상실한 셈이죠. 차이가 있으니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을 거예요.”

 

미국 코네티컷에 본부가 있는 세계 트랜스휴먼 연합은 인간이 지닌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단체였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신체 증강 시술을 합법화하기 위해 증강 자율화 법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지금도 규제의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며 신체를 변형하는 사람들이 연합에 모여 있었다.

연합의 회장은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린 귀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그러니까, 지금의 법률 규제는 쓸데없이 엄격해요. 규제의 명분은 치료는 되지만 향상은 안 된다는 거지요. 하지만 치료와 향상의 경계는 늘 분명치 않아요. 인간은 항상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고 변형해왔으니까요. 증강을 막을 거라면 다들 멀쩡한 뼈에도 박아 넣는 임플란트 시술이나 백신 접종도 막아야겠지요.”

회장은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피어스를 양 귓불에 달고 있어서 마치 고대 문명에서 현대로 이동해 온 왕족처럼 보였다.

“우리 연합 사람들은 주로 새로운 감각에 관심을 가집니다. 시각과 청각의 개선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데, 현존 시술로도 충분히 일반인의 두 배 효율에 달하는 슈퍼비전을 획득할 수 있어요. 다만 그 시술을 허가받으려면 시력이 저하되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는 게 우스운 현실이지요. 자기 센서를 손가락에 삽입하는 것도 유행이 되고 있어요. 저는 일상에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젊은이들 말로는 꽤 재미있는 센서라고 하더군요. 아, 겉으로 보이는 신체를 변형하는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뼈와 근육 일부를 신소재로 과감히 대체해서 매우 곧고 우아한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회원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는 아주 성공적인 모델로 활동하고 있지요. 저처럼 외모에 관해서라면 가벼운 시술로 만족하는 이들도 많지만요.”

트랜스휴먼들은 신체를 변형하고 개조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목숨이 위험해지지 않는 선에서, 혹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그들은 최대한의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확고했다. 더 나은 기능을 추구하며, 기존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진이 트랜스휴먼 연합원들에게 《잘못된 지도》의 중심 아이디어에 대해 소개했을 때, 그들 대부분은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의 몸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우리 사례를 싣고 싶은 거라면, 아주 적합하지는 않은 것 같군요. 다만, 몸이라는 것이 인간의 잠재력이 무궁한 영혼을 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는 느끼죠. 그 잠재적인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도록 신체를 증강하는 것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트랜스휴먼들은 몸 정체성 통합 장애를 앓는 사람들과 달랐고, 사고로 수족을 잃은 이후 환상통을 앓는 사람들과도 달랐다. 트랜스휴먼들은 신체를 변형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기에, 적극적인 신체 개조를 통해 더 나은 신체를 가지기를 원하는 이들이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진이 물었다.

“그럼, 팔을 하나 더 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것도 일종의 증강 아닐까요?”

“글쎄요. 가끔 팔이 모자란다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하죠. 한 손에는 서류를,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무거운 유리문을 밀 때라던가…….”

여자는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두 팔이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

로라는 세 번째 팔을 원했다.

진은 스물한 살에 로라를 처음 만났다. 대학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던 진은, 센터 유니폼을 입은 아르바이트생이 수건을 잔뜩 담은 카트를 밀고 오다 기둥에 부딪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몰려들고, 진이 바닥의 수건을 주워 담는 것을 도와주는 동안에도 어딘가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던 그 아르바이트생이 바로 로라였다. 로라는 진에게 정말 고맙다며, 도와주지 않았으면 저녁 과외 수업에 늦을 뻔했다고, 자신이 언젠가 꼭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진이 로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정은 가벼운 호기심과 호감 정도였다. 문제는 카페에서의 다음 만남이었다. 굳이 자신이 들고 가겠다며 쟁반을 나르던 로라는, 전혀 그럴 만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갑자기 균형을 잃었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옷이 커피 얼룩으로 엉망이 된 로라에게 진은 기겁하며 뛰어갔는데, 그때 보았던 로라의 표정을 진은 잊지 못했다.

커피를 엎은 사람이 흔히 보일 법한, 당황하거나 자책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창피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묘한 체념과 무신경함이 섞여 있던 그 표정. 말하자면 ‘어쩔 수 없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로라.

진과 눈이 마주치자 로라는 표정을 바꾸어 웃었다.

“세탁해도 멋진 얼룩이 남게 생겼어요. 그나저나 여기 커피 냄새가 좋은데, 제가 다음에 또 사도 될까요?”

진은 로라가 지나치게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로라에게 빠르게 매료된 나머지 로라가 어떤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다. 진은 로라의 문제를 아주 나중에야 깨달았는데,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몇 가지 수상한 점이 있었다.

로라는 뜬금없이 양팔을 들어 올리거나, 들어가려던 가게의 문 앞에서 갑자기 멈춰 서거나, 한 손으로 포크를 움직이면서 다른 한 손으로 포크를 막으려고 했다. 진은 그런 행동이 단지 로라의 엉뚱함을 보여준다고만 여겼다. 또한 로라는 단순히 부주의하다고 표현하기에는 과할 정도로 어딘가에 자주 부딪치고, 넘어지고, 피부가 긁히곤 했다. 그런데 로라는 상처를 입고도 별로 속상해하지 않았다. 어느 날 로라의 오른쪽 팔에 유독 많은 상처를 보았을 때 진은 로라가 자해를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 적도 있다. 조심스레 괜찮은지 물었을 때 로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어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거든. 그 후유증인지, 가끔 몸에서 쭉 힘이 빠져. 팽팽히 당긴 고무 끈을 탁 놓는 것처럼. 그래도 심각한 문제는 아냐.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평범한 골칫거리지.”

서른 살에 로라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진은 로라가 재택근무를 해서 다행이라고, 매일 출퇴근하는 것보다는 좀 더 편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다음 해, 진이 로라를 만난 지 거의 십 년이 되어가던 시점에, 로라는 처음으로 진에게 말했다.

“내게는 세 번째 팔이 있어. 그걸 실제로 달 생각이야.”

사고를 당한 열두 살 이후로 로라는 존재하지 않는 세 번째 팔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고로 절단된 사지에 환상통을 겪는 일은 흔했지만, 로라의 경우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과잉 사지에 통증을 느끼는 것이어서, 어떤 재활 치료도 소용이 없었다. 유일하게 로라에게 효과가 있었던 치료는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치료였다. 스무살 무렵 신경과 의사가 제안한 방법이었다. 시뮬레이션 치료는 예상했던 것보다 성공적이어서 로라가 느끼던 세 번 째 팔의 통증은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나 반대로 세 번째 팔이 있다는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진은 도저히 로라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고 후유증으로 거짓 감각을 경험하게 되었다면 거짓 감각을 고칠 일이지, 가짜 팔을 다는 것이 어떻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진은 로라를 설득하기 위해 새로운 클리닉을 물색했고, 다른 병원에 다니며 상담을 받아보도록 권유했다.

진이 무척 당황한 데다 로라를 어떻게든 말리겠다는 의지가 강했으므로, 한동안 로라는 진의 제안을 따르는 것 같 았다. 세 번째 팔을 달겠다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대신, 순순히 진이 이끄는 대로 클리닉을 받았다. 진은 매일 밤 로라에게 나아질 수 있다고, 괜찮을 거라고,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로라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 뒤에 로라는 통보했다.

“진, 나 다음 주에 수술 예약을 잡았어.”

로라는 여러 해 전부터 기계 팔 이식을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우선 세 번째 팔을 다는 수술이 신체 증강이나 취향에 따른 신체 변형이 아니라 로라가 지닌 ‘불일치’ 증상에 대한 치료 목적이라는 것을 지난한 서류 절차를 통해 증명해야 했다. 다음으로 로라는 자신이 느끼는 세 번째 팔의 형태를 직접 디자인하고, 인공 수족의 전문가들과 상의하며 기계 팔을 제작했다. 제작한 팔을 로라가 간이로 부착하고 움직여보며 세부적으로 다듬는 과정도 있었다. 그 팔을 로라의 신경과 근육에 잇는 수술을 하기 직전, 가족들에게 이식 결정에 대해 이야기했고, 마지막 순서가 진이었다. 진은 자신의 연인이 존재하지 않는 팔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도, 그 해결책이 뇌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팔을 다는 것이라는 결론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로라가 아무 상의도 없이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한 다음 단지 통보를 해왔다는 사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수술을 허가해줬다고?”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수술이어서, 그래서 결코 쉽지 않았어. 지난 십 년간 나의 뇌를 계속해서 자료로 남겼어. 진, 이걸 봐. 이게 나의 뇌 속 지도야.”

로라가 내민 자료에는 흑백의 뇌 스캔 데이터들과 의사의 소견이 적혀 있었다.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로라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세 번째 팔이 존재한다고 생생하게 느꼈다. 어떤 방법으로도 로라의 뇌는 고쳐지지 않았다. 잘못된 지도는 이미 로라의 삶 전체를 사로잡았다.

“봐, 지금도 그 팔이 너를 만지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포옹할 때 나는 세 번째 손을 이용해서 네 뺨을 쓰다듬어. 그런데 그게 사실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내가 어떤 틈새에 낀 존재 같다고 느껴. 진, 네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냐. 내가 너라면,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고도 생각했어.”

침묵하는 진에게 로라가 말했다.

“네가 떠나면 난 아주 슬플 거야. 너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기쁘게 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되는 일을 포 기할 수는 없어. 나 자신이 되는 일은 인생 전체를 건 모험이야. 네가 날 지지해주면 좋겠어. 그럴 수 없다면…….”

로라는 말을 멈췄다가, 진을 한참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래도 상관없어.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까.”

 

*

진이 가장 괴로웠던 것은 로라가 애초부터 이해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로라는 과잉 사지를 오로지 자신의 문제로만 남겨두었고, 오랜 시간 진에게 세 번째 팔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며, 기계 팔을 달기 직전에야 모든 것을 통보했다. 진은 로라의 그런 태도를 보며, 로라가 처음부터 어떤 이해도 기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괴로움이 《잘못된 지도》를 쓰도록 진을 이끌었을 것이다. 글은 진이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었고, 진은 로라의 내면을 알고 싶었다.

책과 논문을 수집하며 문헌 조사를 했고, 지인을 통해 제보를 받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수락해준다면 세계 어디로든 인터뷰 대상자를 만나러 갔다. 일 년 반이 넘는 취재 기간에 진은 로라와 비슷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뇌의 잘못된 지도와 몸의 불일치를 신체의 변형을 통해 바로 잡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몸 정체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로라는 유사했다. 한편, 신체에서 무언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한다는 점에서는 트랜스휴먼들도 로라와 유사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로라와 정확히 같지는 않았다.

《잘못된 지도》에 실린 사례 중 로라와 유사한 경우는 단 한 건뿐이다. 취재에 응한 노인은 그것이 이미 지나온 과거의 일이라고 회상했다. 증상은 50대 후반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발생했는데, 약 2주간 왼쪽 허리 부근에서 또 다른 팔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노인은 오랜 재활 훈련을 통해 지금은 그런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하며, 가끔 다른 팔이 달려 있던 자리가 간지러울 뿐이라고 했다. 그 밖에 문헌상으로 보고된 사례가 일부 있었으나 로라처럼 과잉 사지를 경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대개는 인터뷰했던 노인과 유사하게 뇌 병변의 합병증으로 나타났고, 로라처럼 분명한 팔의 존재로 드러나지도 않았으며, 다른 기능 장애가 치료되면 환상지 역시 사라졌다.

진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과잉 사지를 연구한 십 년 전의 논문을 발견하고 취재를 요청했다. 교신 저자에게서 연구 대상인 환자의 개인정보를 넘겨줄 수 없다는 말과 그 이후 새로운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일하게 진의 취재에 응했던 연구원도 실험 결과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제가 연구에 참여한 건 사실이에요. 이미지 분석을 맡았죠. 하지만 그 이후로 같은 증상의 환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과학 연구 중에는 간혹 그런 것들이 있지요. 단 한 번 관측되었다가, 이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 어떤 특이한 현상들이요. 그런 건 사실 자연의 일시적 오류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혹시 어떤 특정한 사례를 염두에 두고 계신가요?”

진이 잠깐 흔들린 것은 사실이었다. 연구원은 로라의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만큼은 과학적 설명을 덧붙여 해설해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진은 결국 로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로라가 자신의 환상지를 끝내 현실로 구현했다는 것도.

 

진은 로라가 든 비유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평생을 살아갈 집의 설계자가 네게 도면을 내밀었어. ‘이게 당신의 집이에요.’ 분명히 도면에는 커다란 방이 하 나 있어. 창문이 커서 햇볕이 잘 들고, 방 한쪽에 책장을 들여 서재로도 쓸 수 있을 만큼 멋진 방이야.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실제로는 그 방이 없는 거지. 내 현실은 작고 비좁은 거실뿐이야. 도면을 준 설계자가 나를 비웃어. ‘잘 찾아보세요, 방이 분명 거기에 있다니까요.’ 나를 놀리는 걸까? 내가 환각을 보는 걸까? 살아갈수록 그 가상의 방이 더 절실해지는데, 무언가가 내 눈을 가려서 문을 찾을 수 없는 걸까? 잘못된 건 나일까, 아니면 이 집일까, 애초에 내가 받은 도면일까?”

진은 로라가 누구에게도 완전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종종 우울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로라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 진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못된 지도》를 쓰면서 진은 로라가 경험하는 현상을, 로라의 신체에 내재된 불쾌감을 적어도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교과서의 특정 구문을 외는 것처럼, 수식을 기계적으로 옮겨 적는 것처럼, 진짜 이해로부터 자꾸만 미끄러졌다.

“진, 네가 그 모든 일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난 기쁘고 또 슬퍼져.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사람들은 글을 쓰고 책을 찾아 읽고 또 애써 상상하지만, 너처럼 온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겠지. 나도 그걸 알아.”

로라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히 해야 해. 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 그 여행을 다녀온 거야.”

 

*

H는 두 번째 메일에서 진이 대학 시절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를 읽었다고 했다. 그제야 진은 그때 썼던 글의 내용을 기억해냈다. 그것은 가벼운 연애 에세이였는데, 자주 다치고 부주의한 연인이 걱정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진이 글을 보여주었더니 로라가 “별 얘기를 다 쓰는구나, 너는” 하고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로라의 그런 특성이 신체의 불일치감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았다면, 그래도 그것이 마냥 사랑스럽게 느껴졌을까.

 

이제 제가 당신에게 메일을 쓴 진짜 이유를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진, 저도 당신과 같습니다. 제게 아주 가까운 사람이 몸을 바로잡고 싶 어 해요. 그건 누가 보아도 끔찍한 결과로 향해 가고 있어요. 저는 불안 하고 두려워요. 그를 잃을까 봐 두렵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그를 앞으로 도 이해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사랑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그는 H의 연인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을 것이다. H는 변형된 신체를 갖게 될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지, 만약 그 새로운 신체를 자신이 끔찍하게 여기기라도 한다면 그것이 옳은 일인지, 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했다.

 

하지만 진, 당신도 알 거예요. 우린 그들을 설득할 수 없잖아요. 이해할 수도 없고요. 우리는 그저…… 기다릴 뿐이에요. 다가올 변화를.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뭘까요.

 

진은 H가 느낄 막막한 심정과 혼란을 이해했다. 벌써 몇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진은 여전히 로라의 세 번째 팔 을 보는 것이 낯설고 고통스러웠다.

만약 로라가 세 번째 팔을 아주 매끄럽게 다루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로라는 적응하지 못했다. 세 번째 팔은 오른쪽 어깨 부근의 근육과 신경에 연결되었는데, 로라가 그 팔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던 것이 애초부터 인간에게 없는 신체 부위를 연결했기 때문인지 혹은 후천적으로 연결 된 팔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신경 접합 부위를 덮은 인공 피부에서는 자주 진물이 흘렀고, 징그러운 흉터가 생겼다. 팔을 수시로 닦아주어야 해서 결국 인공 피부를 반쯤 벗겨냈다. 로라는 기계 팔의 외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무거운 세 번째 팔 때문에 자주 균형을 잃었고, 염증으로 고생했다. 나중에는 원래 가지고 있던 팔의 기능마저 저하되었다. 의사는 기계 팔을 떼어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로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 번째 팔을 가진 채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로라에게 세 번째 팔은 증강도 향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몸에 대한 훼손이었고, 차라리 결함을 갖기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진이 그렇게 긴 여정을 떠났던 것은, 어떤 사람들 이 스스로 결함을 갖는 결정을 내리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메일을 마저 쓰기 시작했다.

 

H,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당신은 그를 설득해보려고 할 테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정을 내리겠죠. 그러면 당신은 혼란스러워지고, 당신 역시 어떤 특정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이제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도 여전히 당신과 같은 혼란을 느낍니다. 그것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 긴 여정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그곳에도 결국 해답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당신의 첫 번째 메일을 받고, 어쩐지 로라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 저는 거의 두 달 만에 로라를 다시 만났습니다. 로라가 기계 팔을 단 이후로 우리는 만나다 헤어졌고, 또 만나다 헤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이 로라의 팔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단지, 우리 사이에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걸 확인해주는 하나의 사건이었을 뿐입니다.

도저히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만나러 왔다는 말에 로라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세 번째 팔로 저를 꽉 안아주었어요.

그 팔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했으며 지독한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힘 조절을 못 해 부품들이 제 어깨를 찔러댔고, 공기 중으로 노출된 인공 근육이 제 뺨을 건드렸습니다.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감촉이었어요. 로라는 제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세 번째 팔을 늘 포옹에 동참시켰고요. 이번에도 그랬죠.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 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마지막 문장을 막 끝마쳤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진은 얇은 커튼을 통과해 쏟아지는 햇빛과 서성이는 실루엣을 보았다. 창문 너머 여름 정원을 등지고 누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서 시작되는 직선의 기계 팔과 뻣뻣한 움직임, 기우뚱한 그림자. 은색의 표면 위로 햇살이 부서졌다.

진이 끝내 이해할 수 없을 로라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