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환상통

Heejoo Lee

Artwork by Eunice Oh

우리는 기본적으로 N 그룹 모두를 좋아했다. 그러나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더 사랑하는 자식과 덜 사랑하는 자식이 있는 법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만옥도 M을 가장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는 것은 단지 호의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에 불과하다. 나는 닭갈비를 좋아한다, 초콜릿을 좋아한다처럼 중요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것을 표현하는 말에 불과하다.  M이 자주 밉고, M을 생각할 때면 고통스럽고, 가끔은 M을 증오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한 것은 M을 향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감정을 숨기고 태연함을 가장한 것과 달리, 만옥은 당당하게 M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만옥의 소유권 주장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았다. 대기시간,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 가끔 만옥이 발작하듯 역시 M은 내 거! 라고 말할 때 주변 팬들이 던지던 따가운 눈총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만옥이 그렇게 공개방송을 오래 다녔는데도 어째서 다른 팬 친구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대다수의 아이돌 팬들이 유사 연애 감정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억누르고 부끄러워하는 것과 달리 만옥은 당당했고 어떤 의미에선 뻔뻔했다.

만옥은 N그룹과 걸그룹의 합동무대를 볼 때, 저건 일일 뿐이라며 애써 웃고 있는 다른 팬들의 옆에서 구겨지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만옥은 N그룹에게 접근할 수 있는 여자라면 그 상대가 누구건 언제나 경계했다. 활동기가 겹친 걸그룹은 물론이고 코디나 회사 직원도 관찰 대상이 되었다 (여기가 만옥의 관찰력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만옥은 몇 개의 백스테이지 영상을 분석해, 유독 M의 화장을 자주 수정해주는 코디네이터의 이름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녀의 SNS계정을 염탐한 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아냈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만옥의 질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멤버들의 사진을 찍어 트위터 등에 올리는 팬들은, M이 그들의 렌즈를 자주 봐준다는 것만으로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나는 만옥이 M을 토닥이고 있던 멤버 B에게 손 떼, 손 떼,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그녀는 그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당황했던 적도 있다.

만옥은 진심으로 M과 자기 사이에 인간 의지 이상의 무엇이 작용하고 있다고 믿었다. 만옥에게는 그녀가 자주 인용하는 M과의 운명적 서사가 있었고, 그걸 근거로 만들어진 사랑의 결실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그 근거란, 다른 팬들의 ‘입덕 계기’에 비해서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만옥이 주장하는 ‘운명’이, M이 자기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모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닮았다는 것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만옥은 남들보다 일찍 이성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녀의 팬으로서의 인생도 시작됐다. 보통 이웃집 친구나, 선생님 따위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만옥이 처음 사랑한 대상은 당시 인기를 끌던 H 그룹의 멤버였다. 만옥은 스케치북에 그 모습을 그리거나 나이 많은 언니들의 틈을 비집고 문방구에서 책받침 따위를 사 모으면서 사랑을 키웠고, 그 애정이 얼마나 컸던지 어린 시절 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벽에 희미하게 쓰인 ‘G 오빠 사랑해요’ 라는 문장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언제인지 모르게 G에 대한 애정이 시들고, 다른 이에게로 옮기길 반복하면서 이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만옥의 애정은 열 개에 가까운 아이돌 그룹을 지나 이젠 B 그룹에게 정착되어 있었다. 그날도 만옥은 B 그룹의 무대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켜고 음악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 좋아했던 G가 TV에 나와 춤추는 걸 보았다. 오빠의 관절이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추억에 잠길 뻔했던 만옥은 어느 순간 무대에 서 있는 게 G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그것은 분명 G였는데 그의 얼굴에선 이기지 못한 세월의 흐름이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에서 춤추고 있는 그는, 분명 예전에 만옥이 좋아했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G였다. 만옥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만옥은 검색을 통해 그가 N 그룹의 M이라는 걸 알아냈다. 나이는 열아홉 살. 어린 시절 만옥이 좋아했던 그때의 G와 같은 나이였다. 만옥은 M에게서 운명을 느꼈고 그때의 전율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그의 영혼, 내가 사랑했던 열아홉 살의 G의 영혼이 M에게 옮겨간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근친성을 설명할 도리가 없어요.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순수함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그때의 G와 M은 거의 동일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M을 향한 나의 사랑을 G의 대리물이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M이 존재할 거였기에 내가 G를 사랑했다고 보는 것이 옳아요. 나는 이미 M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신의 실수로 그가 세상에 도착하지 않았던 거지요. 그래서 M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G라는 대리물을 사랑했던 것이고.
 
만옥은 이 얘기를 자주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영혼이니, 운명을 들먹이는 강한 어조에 나는 할말을 잃곤 했다. 아니, 그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G와 M사리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어서 할말이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둘은 미남이라는 점에서 비슷했지, 크게 닮은 데가 없었다. 그러나 외모에 대한 판단은 일정부분 주관적이기에 내가 만옥의 미감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G에 대한 어린 만옥의 애정을 검증하기 위해 그녀가 얘기하는 증거- 이를테면 G를 그린 그림을 들고 웃고 있는 사진- 따위를 보여달라고 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나는 그저 웃으며 만옥의 얘기를 넘겨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열렬한 망상력이 만옥의 오랜 팬생활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팬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 중 하나가 ‘빠순이는 유전병 같은 거여서 걸리는 사람들만 걸린다’는 거였다. 발병 시기와 재발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십대에 시작해 사람에 따라 육십대 이상까지 계속 재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만옥과 내가 이십대 중반이라는 그간 많은 ‘오빠’들을 모셔왔음을 암시하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N 그룹을 처음으로 오프라인으로 나온 것과 달리 만옥은 청소년기에 몇 번, 스무 살이 된 이후로는 꾸준히 (그녀의 주장대로 표현하자면) ‘M의 대리물’을 따라다닌, 이 분야의 프로였다.

팬으로 산다는 건 어쩌면 끊임없이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매주 같은 날, 우리는 같은 장소를 같은 시간에 찾아갔다. 지난주와 무대의상만 바꿔 입은 멤버들이 같은 노래를 불렀다. 아이돌을 초청하는 행사도 정해져 있었다. 팬들은 봄에는 꽃축제, 여름에는 워터파크 특별무대, 가을에는 단풍축제, 겨울에는 스키장 행사에 가며 계절의 변화를 알아챘다. 나는 모든 일이 처음이라 허둥댔지만 이미 여러 차례 그런 행사를 다녀본 만옥은 언제나 익숙하게 행동했다.

만옥은 때론 다른 아이돌과의 만남을 얘기해 주기도 했다. 만옥은 그들이 비록 M의 대리물이긴 했으나, 그럼에도 그 순간에는 진짜 사랑이라고 믿었다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종종 그때의 경험을 얘기해주곤 했는데 그것이 내게, 만옥의 사랑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는 단초가 됐다. 지방 명산에서 단풍축제가 있던 날, 호남선과 영남선을 구분하지 못해 헤매던 내가 간신히 버스에 올라탄 그날의 얘기도 그중 하나였다.
 
예전에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혹은 이해하지 못하도록 교육받았지요. TV를 틀면 방송국 카메라에 잡히던 사람들. 무대 위의 가수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고, 도대체 저 정도로 압도적인 감정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온 힘을 쏟아내던 사람들. 심장이 필요하다면 심장을, 창자가 필요하다면 창자를 끄집어내줄 것처럼 굴던 그 사람들을 보면서 언제나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고, 너는 저렇게 되지 마라, 고 얘기했었죠. 나는 언제나 네, 그러겠습니다, 라고 했고요. 딱히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어 그랬던 건 아니에요. 그때의 나는 정말로 아버지가 이해하는 만큼 이해하고, 아버지가 바라보는 만큼만 세상을 바라봤었으니까요. 굳이 저 멀리까지 찾아가 소리를 지르는 심정이 뭘까,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TV를 틀면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나 또한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올 때, 저도 모르게 TV앞으로 달라붙던 나를 아버지가 잡아끌던 생각이 나거든요.

성인이 되고 나서 혼자선 처음으로 어떤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을 이기고, 아니 이겼다기보단 억누르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나요. 방송은 아니었고, 쇼핑몰의 홀을 빌려서 한 공개 사인회였죠. 나는 사인회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미리 가서 바지 하나와 야구점퍼 하나를 샀어요. 왜냐면 나에겐 바지가, 가을을 날 수 있는 바지 하나와 추운 날에 입을 야구점퍼 하나가 필요했거든요. 그렇게 쇼핑백을 들고, 일부러 시작시간보다 약간 늦게 사인회가 열리는 홀로 향했어요. 천천히, 평범하게 걸으려고 노력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땐 우스울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더군요. 심장은 쿵쾅대고 한 손에 든 쇼핑백이 번거롭게 느껴졌어요.

머지않아 사인회가 끝나고 멤버들이 마지막 인사를 했어요. 모두 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고 말하면서 손을 흔들어주었지요. 그때 나는 구경하는 일반인인 양 팬들 사이를 빠져나와 있었습니다. 문득 주변에 중고생만 가득하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좀 부끄러워졌던 거지요. 그런데 기적처럼 한 멤버가 나를 알아봐주었고, 모두들 착각이라고 얘기하겠지만, 분명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어요. 아주 작게, 나만 알아볼 정도로. 그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런 환희였어요. 내가 그를 알아보고 그가 나를 알아본 그 순간. 그날을 계기로 내가 이렇게 현장을 다니게 된 거지요.

물론 처음부터 순탄한 건 아니었어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우리 지역 축제를 가거나 잠실에서 열리는 합동 콘서트에 간 걸 제외하곤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멤버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너무나 길다는 거였어요. 분명 아침에 나와 밤에 들어가는데도 내가 그들과 만나는 건 그들이 무대에 서는 시간과 출퇴근하는 몇 분뿐이었어요. 그걸 제외한 모든 시간이 기다리는 시간이었지요. 나는 처음으로 시간이 정말 느리다는 것과 하루가 무척 길다는 걸 알았고, 시간이 많으면 사람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걸,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팬들이 몰려다니고, 웃고, 욕을 한다는 걸 알았어요.

가끔 무엇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나는 두려웠어요. 겁이 나서, 몇 번이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일을 그만두려고 했지요. 그러나 기다림을 보상해주는 실재, 몇 번을 보아도 신기하고, 언어로 설명되길 거부하는 그 모습, 그의 그림자나 그의 그림자로 착각한 것까지도 놀랍게 만들어주는 그 실재의 힘을 나는 이미 알아버리고 만 거지요. 현장을 다니게 된 이후로 나는 사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졌어요. 그가 좋아한다고 말한 이후, 나는 거리에 벚꽃나무가 그렇게 많다는 것을, 산들바람이 그렇게 자주 분다는 것을 처음 알았지요.

한번은 데뷔 전에 우리 이웃 도시에 오래 살았던 멤버를 좋아한 적이 있었어요. 내 방 창에선 바로 그 도시가 보였지요. 매일 밤, 나는 습관처럼 창문을 열었어요. 멀리 보이는 불빛이 마치 그가 남기고 간 흔적처럼 생각되었지요. 그 도시와 나는 그를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래서 그 도시가 거기에 있다는 게 내겐 무엇보다 위안이 되었지요. M을 사랑하게 된 지금, 그 도시는 내게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아요. 그럼에도 나는 그 도시를 볼 때면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외려 삶을 견디게 해주었던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팬이 아니었다면 이런 감정은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