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편의 시

김명순

무제

노란 실 푸른 실로 비단을 짠 듯
평화로운 저녁 들에
종다리 종일의 노래를
저문 공중에서 부르짖으니
가는 비 오는 저녁이라.

내 어머니의 감격한 눈물인 듯
갤 듯 말 듯한 저녁 하늘에
비참한 나 큰 괴로움을
소리 없이 우러러 고하니
가는 비 오는 저녁이라.

봄 동무의 치맛자락 감추이듯
어슥어슥한 암(暗)의 막(幕) 내려
천하의 모든 빛 모든 소리
휘덮어 싸놓으니
가는 비 오는 저녁이라.




창궁 (蒼穹)

파아란 가을 하늘
우리들의 마음이 엄숙할 때
감미로운 기도로 채워서
말없이 소리 없이 웃으셨다

파아란 가을 물결
그들의 마음이 노래할 때
애처로운 사랑으로 넘쳐서
고요히 한결같이 보셨었다

오오 가을 하늘 우리의 집아
많은 어제와 많은 오늘을
가장 아름답게 듣고 본 대로
영원히 영원히 지켜라.




언니의 생각

언니의 그때 모양은
날쌘 장검(長劍) 같아서
“네 몸의 썩은 것은
있는 대로 다 찍어라!”
맑게 엄하게 말하셨어요

언니의 그때 모양은
온화한 어머니 같아서
“가시나무에서
능금을 따려 하지 마라!”
슬프게 고요하게 기도하셨어요.

그러나 지금은······?
장성(長成)하는 생명의 화려함이
피는 꽃의 맑은 향그러움이
얼마나 우리들을 깨우고
얼마나 우리들을 뒤덮을까?




신시 (新詩)

외그림자조차 놀라운
외로운 여인의 방에는,
전등조차 외로워함 같아
내 뒤를 다시 돌아다본다.
외로운 전등 외로운 나,
그도 말없고 나도 말없어,
사랑하는 이들의 침묵 같으나
몹쓸 의심을 함만도 못하다.






길, 길 주욱 벋은 길
음향(音響)과 색채(色彩)의 양안(兩岸)을 건너
주욱 벋은 길.

길 길 감도는 길
산 넘어 들 지나
굽이굽이 감도는 길.

길 길 작은 길
벽과 벽 사이에
담과 담 사이에
작은 길 작은 길.

길 길 유현경(幽玄境)의 길
서로 아는 영혼이 해방되어 만나는
유현경의 길 머리 위의 길.

길 길 주욱 벋은 길
음향과 색채의 양안을 전(傳)하여
주욱 벋은 길 주욱 벋은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