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정지돈

Artwork by Elizabeth Gabrielle Lee

어느 날부터 태아들은 태어나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2041년 2월 1일 이후로 한 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다. 임신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되는 건 출산이었다. 자연 분만은 성공할 수 없었고 산모와 태아 모두 죽는 결과를 초래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꺼내면 바다에서 막 잡은 갈치처럼 아이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어버렸다. 지리적 차이 없이 지구 전체에서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태아의 죽음을 선택이라고 명명한 것은 폴란드 출신의 생물학자 바실리 그로스만의 연구 결과에 따른 일이었다. 자연적이라고 하기에 아이들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지점이 너무 많았다. 그로스만은 태아들의 뇌파 및 시냅스와 변연계의 변화 양상을 분석한 데이터를 통해 태아들의 죽음이 선택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왜 태아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일까. 태아가 의식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인가. 여기에 대해선 누구도 적절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환경 변화로 지구가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일까. 가이아의 신호가 예민한 아이들의 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일까. 이것을 자살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인류의 지속에 대한 완강한 거부. 이것은 자연 도태인가.

정자와 난자가 선택을 할 수 없음은 분명했다. 수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수정과 출산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바실리 그로스만은 이후의 연구에서 이 문제를 붙들고 늘어졌으나 쉰 다섯이 된 해에 벼락을 맞고 죽었다. 스코틀랜드의 벌판에서 있었던 일로 낙뢰 사고가 잦은 곳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했기 때문에 지구가 그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종교와 사이비 믿음, 사이비 과학이 득세했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인류의 멸망을 당연시하는 부류가 생겨났다. 주류가 되는 종은 그 종이 어떠한 생물 형태이건 멸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인류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터무니없는 오만이다.

출산이 없는 임신, 죽어버린 태아, 삶에 대한 맹렬한 저항은 부모가 이겨내기에 너무나 끔찍한 고통이었다. 점점 임신하는 경우가 줄었고 어쩌다 임신을 하더라도 낙태를 했다. 사람들은 늙어갔고 지구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유달리 자연 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구결과 자연 재해가 지구 전체의 역사에 대비해 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지구가 인류를 집어삼키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인구 감소에 비례해 환경은 점점 정상화되었다. 온난화의 진행이 멈췄으며 사막화의 진행이 둔화되었다. 그러나 태아들은 여전히 태어나는 것을 거부했다.

전 세계 인구가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든 시점에서 바실리 그로스만의 딸이자 인류의 마지막 세대인 생물학자인 예카테리나 그로스만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만약에 출산이 지구가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며 지구가 태아의 뇌에 신호를 보내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지구에서 벗어나 출산을 하면 되는 것 아닐까.  

단순하지만 강력한 주장이었다. 과학적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지만 리처드 브랜슨의 유지를이어 받은 버진 애틀랜틱은 기업의 모든 역량을 예카테리나에게 쏟아 부었다.

예카테리나와 그의 남편 에리크는 프로젝트가 실행되고 1년 뒤 임신했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바실리로 붙였고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게 했다. 바실리 그로스만 주니어. 이틀 후, 부부는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지구를 벗어났다. 지구의 영향이 얼마나 멀리까지 미칠지 알 수 없었다. 최대한 멀리 가야했다.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지구에서 벗어난 그들이 도달한 곳은 토성의 위성인 엔셀라두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인 엔셀라두스는 컴컴한 동굴 속에 뚫린 구멍처럼 보였다. 저 구멍을 통과하면 빛이 가득한 지상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다. 예카테리나는 생각했다. 아이가 배를 차는 게 느껴졌고 출산이 임박했다.

그러나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바실리 그로스만 주니어는 태어나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자연 분만이 실패한 뒤 제왕절개를 시도했으나 아이는 난폭하게 저항했다. 예카테리나의 장기가 손상됐고 예카테리나와 바실리 모두 사망했다. 우주선에 동승한 두 명의 동료 중 하나인 존 B. 프리먼은 절망에 빠져 자살했다. 에리크와 남은 한 명인 킴은 지구로 우주선의 방향을 돌렸다.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돌아가야 했다. 그들에겐 실험의 결과를 알릴 책임이 있었다.

지구로 귀환하는 길에 에리크와 킴의 우주선은 표류했다. 항법 장치에 이상이 생겼지만 존이 없어 수리할 수 없었다. 다행히 우주선은 수십년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고 킴과 에리크는 지구로 돌아갈 모든 수단과 방법을 찾았다.

두 사람이 지구에 도착한 것은 22년이 지난 뒤였다. 우주선을 버리는 방법을 선택했고 탈출 포트를 타고 태평양에 떨어졌다. 지구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플로리다 해안가에 내린 그들이 도시에서 마주한 것은 침묵과 고요였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킴이 말했다. 우리 세대 사람들은 기껏해야 육십대입니다. 아직 그들이 버티고 있을 거예요.

그러나 에리크는 모든 게 망상처럼 느껴졌다. 지구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구는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터득했다. 인류는 할만큼 했다. 이제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에리크는 총을 꺼내 킴의 머리에 겨눴다.

아기가 있어요. 킴이 자신의 배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녀와 그는 우주에서 여러 번 섹스를 했지만 임신을 시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에리크는 총구를 돌려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킴은 에리크의 시체를 부드러운 모래 사장에 묻었다. 그녀는 플로리다의 버려진 병원에 자리를 잡고 생활을 시작했다. 킴은 아이의 이름을 예카테리나로 지었고 카챠라고 불렀다. 그녀는 생각했다. 카챠가 태어나지 않으려고 하면 함께 죽으면 된다. 카챠가 태어난다 한들, 그 아이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류는 어쨌든 멸종할 것이다. 그러나 킴은 물어보고 싶었다. 아이에게, 지구에게. 왜 존재하는 것을 포기했는지, 삶은 무가치 한 것인지, 생명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