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나

Moon Bo Young

애인이 떠날 때 뇌를 두고 떠났다 갈아 마실 수도 있겠 다 인간의 뇌를 살펴보고 만져 본다 노랑 가발을 씌워 보 고 눈을 감겨 보고 따듯한 물에 담가 본다 손가락으로 꾹 누른다

뇌는 통증을 느끼지 않으므로 머리를 열고 수술을 받 으며 환자는 베토벤 「Symphony No. 9」이나 라흐마니노프 「Prelude Op 23 No. 5」를 들을 수 있으며 외과의와 뇌의 출 혈 정도와 수술 실패 가능성에 관한 긴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뇌는 인간다운 활동을 가능하게 하니까

뇌는 태연히 거실의 가죽 소파에 앉아 있다 그것은 난 생처음 푹신한 것에 앉아 본다 콜리플라워 같은 얼굴로 창 문을 바라본다



*
 
뇌는 마지막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놀이동산

회전목마가 돌아간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손을 흔든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녀도 울타리 바깥에서 손을

흔든다 모두 괴이한 물체를 들고 있다

원통으로 된

투명 막대기 끝

손바닥이 달린

장난감

원통은 알록달록한 눈깔사탕으로 채워져 있다

손이 있으면서 손을 사서 기어이

손을 흔드는 사람들 그녀도

손을 흔드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앞머리가 바람에

넘어가면 보이는

그녀의 이마와 이마 위의

요점 없는 주름살 하나를 그녀는

떠올린다

뇌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일까?

 



실제 본 것보다 더 많이 기억하는 것은 뇌가 지닌 유일 한 결함이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DNA들이 피해를 입는 다 뇌는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기억을 발생시키는가 이 문 제를 밝히는 일은 매우 어려운데 뇌의 신경 세포인 뉴런의 어원이 밧줄이므로 우리가 기억을 할 때 밧줄을 이용한다 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

뇌는 여전히 소파 위에 앉아 있다 창문을 열자 바람이 뇌의 열기를 식힌다 미야시타 야스시는 원숭이의 뇌에 전 극을 꽂고 측두엽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창밖에 누군가 매달려 있다 창문은 미소를 과장하 는 측면이 있지, 미야시타 야스시는 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넣는다

(동그라미, 네모, 별 모양을 보여 준다)

원숭이들의 반응 : 반응 없음

(사람을 보여 준다)

원숭이들의 반응 : 약간의 반응 후 소멸

(원숭이를 보여 준다)   

원숭이들의 반응 : 반응 지속

그는 불공평한 관심 쏠림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원숭이는 왜 원숭이에게만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가 어떤 사람은 그 사실에 섭섭할 수도 있다 창문에 매달린 사람은 왜 비 오는 날에도 히죽 웃고 있을까 그는 밧줄 없이 어떻게 21층 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뉴런의 어원은 밧줄이므로 잊고 싶은 기억이 떠오를 땐 밧줄을 친친 감아라

 

*

뜨거운 여름

마당에 물을 뿌리듯

생각을 잠재우고 있다

머리로 귀를 덮은 사람

위를 덮는 하늘

을 덮지 못하는

밋밋한 구름

창문에 매달린 사람

호스 끝을 살짝 눌러 물을 세게 뽑아낸다

푸르딩딩한 물

에 맞는 화초들

밧줄 없이 창문에 매달린 사람

연필을 거꾸로 잡아

끝에 달린 작은 지우개로 뇌의 측면을 꾹

누른다 뇌는 꺼지지

않는다 뇌는

아무것도 껴안지 않고 잠든 나무

아래서 은하수같이 은은한 포자를 날리며

자는 늙은 버섯 대가리처럼

부드럽지만 단단해

누르자

몸을

움츠린다

주름 사이사이 검붉은 피가 각자의 자리를 찾아 고인다

떼자

부푼다

주름 사이로 차오른 피가 다시 스며든다

 



비스킷을 씹을 때

내가 씹는 소리는 내게만 크게 들리고 너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다

밧줄을 이용하자

내가 밧줄을 던질 테니 너는 손목에 밧줄을 묶어라

내가 씹는 소리가 너에게도 크게 들릴 것이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문

각각의 손잡이에 밧줄을 묶어 바람이 드나들게 하라

 

*

끊긴 부위가 많은 초록색 끈끈이

뉴런은 발 닿는 대로 뻗쳐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초록 페인트 통을 쏟은 것 같아요

클라이스트는 대뇌 피질 기능 지도를 그리기 위해 연필을 꽉 쥐었다

전자현미경을 꺼낸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을 50억 배 확대해 보고야 마는 마음은 나쁜 마음이에요

뉴런의 연결 방식을 변경함으로써 기억이라는

끊기기 일보 직전의 낡은 밧줄이 하나 더 생긴다

 

*

나는 비닐장갑을 낀다

뇌를 두 손에 받쳐 든다

옆으로 펑퍼짐한 뇌를 꼼꼼히 살핀다

씹어 보지 않아도 질긴 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뇌는 눈을 비비거나 침을 흘리지 않지

식은땀을 흘리지도 않아

어느 곳에서 봐도 옆얼굴이어서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 주름에는 피가 차오른다

주름이 굵고 선명하다

 

*
 
이것은 창문에 홀로 매달린 이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