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김경주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는 밤 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
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
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
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 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오는 골목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거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
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
각만으로 나는 겨우 음악이 된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
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
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워크맨은 귓속에 몇천 년의 갠지스를 감고 돌리고 창틈
으로 죽은 자들이 강물 속에서 꾸고 있는 꿈 냄새가 올라
온다 혹은 그들이 살아서 미처 꾸지 못한 꿈 냄새가 도시
의 창문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관의 말뚝에 매인
산양은 왜 밤새 우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
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들
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기미

          -리안에게

     황혼에 대한 안목은 내 눈의 무늬로 이야기하겠
다 당신이 가진 사이와 당신을 가진 사이의 무늬라고 이
야기하겠다

     죽은 나무 속에 사는 방과 죽은 새 속에 사는 골목
사이에 바람의 인연이 있다 내가 당신을 만나 놓친 고요
라고 하겠다 거리를 저녁의 냄새로 물들이는 바람과 사람
을 시간의 기면으로 물들이는 서러움. 여기서 바람은 고
아라는 말을 쓰겠다

     내가 버린 자전거들과 내가 잃어버린 자전거들 사이에
우리를 태운 내부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 귀가 없는 새들
이 눈처럼 떨어지고 바다 속에 내리는 흰 눈들이 물빛을
버린다 그런 날 눈을 꾹 참고 사랑을 집에 데려간 적이 있
다고 하겠다

     구름이 붉은 위를 산문에 걸쳐놓는다 어떤 쓸
쓸한 자전 위에 누워 지구와의 인연을 생각한다고 하겠다
눈의 음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별의 무렵이라고 하겠다

     내리는 눈 속의 물소리가 어둡다 겨울엔 눈안의 물
결이 더 어두워지는 무렵이어서 오들도 당신이 서서 잠든
고요는 제 깊은 불구로 돌아가고 싶겠다 돌의 비늘들과
돌 속의 그늘이 만나서 캄캄하게 젖는 사이라고 하겠다